정유년(丁酉年), 우리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절벽 위에 섰다.
역사는 도약이기도 하다. 한국은 20년 주기로 엄습한 위기를 국가의 발전 기회로 전환시킨 나라다. 1960년 4•19와 1961년 5•16 뒤엔 빈곤을 극복했고, 1979년 10쪾26 이후엔 국가경제를 시장경제로 강화시켰으며, 1997년 외환위기로 기업체질을 바꿔냈다. 그런데 그때와 또 다른 불안과 격랑의 한 가운데 대한민국호가 난파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
인간의 정서는 항상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정언적(定言的) 표현이 참 다양하다. 위험사회, 격차사회, 피로사회, 불안사회 등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불안사회다.
불안은 공포보다 가늠하기 더욱 어렵다. 공포는 대상이 보이지만 불안은 가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아야 성공한 삶이다. 잠 푹 자고 많이 웃는 삶이 진짜 성공이다. ‘불안은 현대인의 질병, 기대수치를 줄여라’ 알랭 드 보통의 말이다.
불안에 대한 해독제가 있다면 이해이다. 자신에게 매몰되지 말고 전체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고 드 보통은 인문학적 렌즈를 비춰 재발견하는 기쁨을 선물하는 이야기꾼이다. 무엇인가 하기 위해서는 우선 뜻을 세워야 한다. 뜻을 세워야 나아갈 방향이 정해져 조금이라도 진도를 나갈 수 있게 된다. 한 해를 시작할 즈음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많은 뜻을 세우고 각오를 다진다.
테제(these)를 바꾸어 신화(神話)로 이바구를 진로로 틀어보려고 한다. 신화란 인간 상상력의 요체이므로 그리스 신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판도라(Pandora), 그리스 신화 중의 미녀요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가 천계(天界)의 불을 훔쳐낸 것에 노한 제우스(Zeus)가 인간을 벌하기 위해 헤파이토스(Hephaistos)로 하여금 흙으로 인류 최초의 여자, 즉 판도라를 만들게 하고 판도라를 시켜 인류의 죄고(罪苦)를 가득 쳐 넣은 상자를 인류에게 내렸다는 것.
여기에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인생의 모든 죄악(罪惡), 재화(災禍)를 싸서 넣어 주었다고 하는 궤(櫃), 판도라가 호기심에서 이것을 열었기 때문에 모든 불행이 쏟아져 나왔으나 희망만은 끝까지 궤 속에 남아 있었다나.
또 다른 일화를 곁들이면 필자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일본의 동화 우리시마 다로(浦島太郞)의 용궁동화와 우리나라의 별주부전의 차이는 거북과 자라가 다를 뿐이다. 그물에 걸린 거북을 살려준 다로가 용궁에서 선물로 갖고 온 상자는 절대 열지 말라는 부탁을 망각하고 궤짝을 열어 본즉 그 통 속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갑자기 다로의 머리가 희어져 늙게 됐다는 것인데 판도라를 패러디한 것인지는 당시엔 몰랐다.
우리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내린 벌은 마땅히 당연히 받겠지만, 실망치 말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희망을 품고 일어서 나가려는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