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위론(時處位論)이란 때와 장소, 입장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인데, 아무리 그런 판단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시구진(與時俱進)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변신함을 뜻한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펴고 난다고 헤겔은 말했다. 황혼은 낮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마침내 뒤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큰 손 들고 ‘협회가 이것만은 틀림없이 훌륭히 해냈다’고 역사 앞에 쌍수 들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역사의식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도로 일정한 실증법과 함께 논리적인 일관성도 있었다.
이것이 시대정신에 충실한 자부심이다. 평탄한 노면을 질주하던 차가 노면에 뾰족이 솟은 돌부리에 맞아 차체가 튕겨 승차감을 훼손시키는 쌀독에 뉘처럼 신경 쓰인다.
임의(任意)의 단체에서 법정단체로 넘어온 지 벌써 이립(而立)의 성년에 이른 대한안경사협회가 명문상 손댄 수가표가 없다는 문제가 항존해 있다는 것.
가격표시의 수가는 안경원에서는 말처럼 그리 간단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2대 조창남 협회장 때 일이지만 수가산정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시력검사는 수가에서 고사하고 렌즈를 테에 맞게 깎고 갈아 초점이 맞도록 하는 기술적인 피팅, 근원초점의 적절하게 잘 보이고 가볍고 편하게 조림하는 기술의 수가는 당연한 항목에 들어가나 안경테의 가격이 일정치 않다는 문제가 된다는 점이 수가정립에 암초가 됐다.
고가와 저가, 들쭉날쭉한 시세의 가격변동, 시세와 품귀현상에 따른 가격의 폭등 등 정가를 매길 수 없는 유동을 어찌 일정한 수가로 묶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난제로 벽을 뚫을 수 없어 여태껏 미루어 왔던 것인데, 미련한지 아니면 용감한지 앞뒤 보지 않고 좌고우면, 나아가 상부기관에 사전 통지는 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간 시내 안경원에 비치토록 조치해 놓고 있다.
속담에 아는 길도 물어 가라고 했다. 당국이 눈감고 모른 척하지 않는 것이 공무(公務)의 일이 아닌가. 길은 택했고 과정은 이겨냈고 앞으로도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깊이 따져 들어가면 교만보다도 자만이 더 나쁠 수가 있다.
나는 심상소학교에 입학했을 때 일본인 교장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은 ‘자네, 자만하지 마라’였다. 지혜란 삶에서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할 수 있는 지능과 자아의식을 통한 반성의 산물이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우연히 한두 번 계속되고 나면 그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한두 번의 예측에 성공하여 선견지명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견해를 따르게 된다.
문제는 일으키는 곳과 수습하는 곳은 다를 수 있다. 종국적으로 본 협회 중앙에서 해결해야 할 차례다. 그게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