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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철테 정말 꺾이나!
  • 정재훈 기자
  • 등록 2013-06-17 17: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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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속, 도금, 용접업체 등 명맥만 유지… 철테와 뿔테가 서로 공존해야 안경산업 발전
 
실용성과 가격, 디자인과 컬러감에서 흠잡을 곳이 없는 일명 뿔테가 안경시장에서 10년 이상 장기집권하고 있다. 일명 철테로 통칭되는 준금장이나 금장이라는 용어가 최근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뿔테의 인기가 10여 년째 몰아치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철테 제조업체의 대부분이 이제는 뿔테 생산으로 돌아섰고, 그나마 철테의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수출이 대부분이어서 20~30년간 철테 생산에 종사하던 고급인력은 아예 타 업종으로 일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대구 3공단에 자리한 부속업체나 도금, 연마, 용접 업체들은 겨우 자리만 채우고 있는 상태다. 이것이 오늘의 대구 철테 생산업체의 현주소다. 15년 전만해도 부속업체를 운영하던 K대표는 ‘시대의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는 말로 철테의 몰락을 한마디로 대변했다.
K대표는 철테 기술자들이 생산현장을 떠나는 현실에 대해서도 “호수에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줄어들지만, 다시 물이 차면 새로운 물고기가 생기는 법”이라며, “철테가 시장에서 다시 인기를 얻으면 상황에 맞게 새로운 기술자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의 말속에서 체념과 희망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지만, 기자가 만난 업체 관계자 대부분은 K대표와 달리 체념된 의견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철테를 생산하며 한때 잘나가던 G대표는 자신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말하며 “철테만 생산하다 어쩔 수 없이 뒤늦게 뿔테에 손댔지만, 오랜 안경 생산경력으로 뿔테를 만드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자금에 여유가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 그는 대구에서 철테를 생산하던 업체들이 지금은 꽤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철테를 생산하던 어느 공장 사장은 지금 대구에서 영업용 택시를 몰고 있는가 하면 마늘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은 어느 철테 사장이 사업 실패를 비관한 나머지 일가족이 차안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동반 자살을 한 경우라고 했다.
20년 동안 안경테 생산에 몸담고 있는 자신이 때때로 한심하다고 느낀다는 그는 뿔테 인기가 이처럼 오래 갈 것이라는 예상도 못했다며 “철테가 예전처럼 다시 활기를 띠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뿔테도 워낙 많은 업체들이 달라붙어 갈수록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철테 기술자들 타 업종으로 대부분 이직
지금도 철테를 만들고 있다는 H대표는 10년 전에 비해 생산량이 10/1로 줄어든 400여 장을 생산하고 있다. H대표는 “배운 것이 도둑질(?)이어서 마지못해 붙들고 있지만 철테는 어차피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철테는 커팅부터 용접, 도금, 코팅, 레이저가공, 연마, 담금질 등의 수십 공정이 집약되는 산업인데, 공정 중에서 한두 곳만 붕괴되도 철테 생산은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30년간 철테 용접을 해온 N대표는 경영 악화로 작년 11월에 직원들을 정리했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아내와 함께 용접을 하고 있지만 그나마 일도 많지 않아서 공장문만 열어 놓고 있는 상태다. 한때는 8명의 직원이 매월 1만 장 가까이 용접을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쉬엄쉬엄 일할 정도만 처리하고 있다.
특히 N대표는 “이제 누구도 철테 관련해서는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철테 시대가 돌아와도 숙련공이 없어서 질 낮은 철테를 고가에 수입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우려했다. 철테가 된서리를 맞는 것은 용접 물량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안경테의 유행이 뿔테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용접업체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뿔테 역시 업체마다 가격경쟁 치열
안경 생산업체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철테 시대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투자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철테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부러지지 않고, 가볍고, 컬러감 좋고, 가격까지 철테에 비해 저렴한 뿔테를 소비자가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요즘의 뿔테는 예전 것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앞으로도 뿔테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제조업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다만 영세 철테 생산업체들이 생산 의욕을 높일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한목소리를 냈다. 뿔테의 인기만 쫓다 보면 한국안경의 미래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취재 도중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은 뿔테 생산 역시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대구의 제조업체 대다수가 뿔테 생산에 뛰어들면서 공급과잉에 빠진 결과이다. 하루가 다르게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뿔테든 철테든 안경테는 제품 특성상 신소재와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해 고급화시키며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잉이다 보니 개발 여력이 떨어지고, 그나마 제품을 고급화해도 어느새 카피제품이 곧바로 튀어나오면서 한순간에 일반적인 제품이 되어버리기 일쑤이다. 모처럼 각광을 받기 시작한 울템이 출시 후 몇 달 못가서 업체들의 아귀다툼 식의 가격 경쟁에 휘말려 싸구려 제품으로 전락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현재 안경에 종사하는 안경사나 제조업체 관계자는 철테가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경원이나 제조업체 모두 객단가 하락으로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철테를 정상적인 상태로 끌어올려야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수도 없고 생산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안경산업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철테와 뿔테가 서로 공존하면서 화려하게 꽃을 피워야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지는데,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철테가 병든 환자처럼 시름시름 죽어가면 한국 안경산업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철테와 뿔테의 판매가 남북으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한국 안경산업. 이제 안경업계와 관계기관은 더 늦기 전에 철테 복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미니인터뷰, “안경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대구에서 17명의 직원과 함께 대형 부속업체를 운영하던 Y씨. 그는 87년부터 업체를 운영하다 작년에 사업을 접고 현재는 안성에서 알곤용접일을 하고 있다.

Q. 현재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가.
A. 23년간 일하던 안경업계를 떠나 일용직도 해보고 식당도 운영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가까운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알곤용접일을 하고 있다. 업종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안경밖에 배운 것이 없었다. 안경에서는 우리 같은 일을 하면 150만 원 이상 받기 힘든데 지금은 월급 받고 보너스도 받고 일하기 좋다. 10월부터 일이 많아져 계속 바빴다.

Q. 사업을 그만둘 때 어땠나.
A. 5년 전부터 작은 업체들이 계속 없어지기 시작했다. 부속업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철테는 예전보다 70%가 사라졌다. 용접의 경우 한 번(한 방이라고 표현했다)하는데 50원을 받았는데 이 가격은 30년 전과 똑같다.
안경테 하나에 보통 15번의 용접을 하는데 지금은 공정이 많이 줄어서 테 한 장당 계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경은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외상으로 시작하는 사람들 많다. 외상으로 시작하니까 미수금이 쌓이고, 하청업체는 이 돈을 받기 위해서 계속 일을 해줘야 한다. 하청으로 일하기 때문에 큰 업체에서 수금을 안해주면 줄줄이 도산하게 된다.

Q. 철테가 유행하면 돌아올 생각이 있는가.
A. 다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 하는 일이 훨씬 낫다. 안경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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