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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전문 분야에 쓰이는 말을 용어(用語, Term)라고 한다. 철학용어ㆍ의학용어ㆍ과학용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전문용어들이 다른 분야로 옮겨져 쓰이게 되면, 제집에서 쓰이던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어떤 용어이든 양의(兩義) 내지 다의적(多義的)인 뜻이 내포된 것이 많다.
부조리(不條理)란 언어는 일반적으로 조리나 이치에 어긋나거나 맞지 않는 뜻이 담긴 말로 쓰이며, 부정행위를 에둘러 표현하는 언어로도 쓰인다. 그런가 하면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를 나타내는 실존주의적 용어로, 특히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철학의 용어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근간에 엔트로피(Entropy)라는 과학용어가 사회용어로 옮겨오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본디 이「엔트로피」란 19세기 중반 독일 물리학자인 클라시우스(clausius)가 처음 제안했으나 과학적 개념으로 확립시킨 사람은 벨기에의 물리학자인 프리고진이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程度)라는 뜻으로, 원래는 열역학과 관련된 개념으로 탄생했다. 열역학 제 1법칙은 잘 알려진 에너지 보존법칙이고, 열역학 제 2법칙은 열과 관련된 모든 반응에서는 반드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엔트로피의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하려면 열역학을 배제하고 그냥 무질서의 상태를 생각해도 된다. 무질서가 증대되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엔트로피 법칙의 파동이 우리 안경업계에도 미치고 있지 않나하는 우려의 파고를 넘어 문턱까지 진입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도심(都心)은 모르지만 웬만한 밀집상가에서도 신설하는 안경점은 기존의 점포와 거리를 두는 체면이라는 양심이 있었다.
그런데 근간에는 어떤가. 바싹 옆에 붙거나 빤히 마주 보이는 거리에 개설하는 것이 상례(常例)가 됐다나…. 이것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 언급한 무질서다. 이 무질서를 정연(整然)케 할 계책은 없는가? 아니면 중구난방(衆口難防)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이 최상책으로 간주하고만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처할 비방은 단 한 가지다. 무질서가 혼돈이라면 자정작용(自淨作用)의 자연법칙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업계의 지도층은 할 일이 단 한 가지가 있다. 겉으로는 수수방관같이 보이게 하지만 내용은 무질서가 타고 흐르는 시간을 예(銳)히 체크해야 한다. 다만 종합ㆍ분석은 하되 판단은 유예(猶豫)하거나 유보(留保)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무질서 그 자체 안에서도 무질서가 태동되니까. 그것은 바로 질서(秩序)의 환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