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의 세평(世評) 칼럼에서 「안경인의 사회적 위치」를 논했다. 어떤 학설(學說)이나 철학(哲學)이 일세(一世)를 풍미(風靡)하다가 사라지는 역사적 사조(思潮)를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서구(西歐)의 역사에선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하여 번성을 누릴 때 신학(神學)과 함께 스콜라(Scholar) 철학이 각광(脚光)을 받았는가하면 계몽(啓蒙)시대의 이성(理性)이 빛을 발했고, 근대에 와서 실존철학이 인류의 눈을 뜨게 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관념적인 철학보다는「사회학」이 동서를 막론하고 뜻있는 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족했다.
사회란 나만이 아닌 너와의 관계, 나아가서 우리관계 구성이 바로 사회다. 이러한 사회라는 패러다임의 용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술어다.
안경사는 수공업의 기능자로서 자영업(Owner)을 할 수 있는 중산계층에 속하는 법정 직인이다. 안경원에 고객(수요자)이 주문한 안경을 맞추어 줄 때「편하고」「가볍고」「안전하게」제공해야 하는 것이 안경사가 해야 할 첫째 임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임무수행에서 나 또한 이 직업에서 가볍고 편하고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인가? 자문해 보면 백% 수긍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고, 장래성도 밟지만 않다고 보는 것이다.
안경사가 취업할 곳은 안경원이다. 여기에 임시니 계약이니 하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업주의 사정에 의한 타의로 그만두거나 아니면 자의로 나가던 업소를 등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태는 안경광학과라는 안경사 전문양성기관이 생긴 이후에도 변치 않고 지속되어 오고 있는 실상(實相)이다.
나아가서 안경업 직종은 만년(滿年)이 보장되지 않는다. 젊어야 종사자로서 근무할 수 있지 4~50줄에 들어서면 젊은층 고객이 외면한다.
속된 말로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것이 있다. 개업하면 되지 않은가라고 솟아날 구멍을 가리킬 수 있다. 수마자동옥습기(手磨自動玉褶機), とりし(砥石)한 대, 검안실만 있는 구멍가게는 6~70년대식 안경점 시설이고, 요즈음은 기본 시설장비ㆍ안경테ㆍ렌즈 나아가 인테리어 그밖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쏟아야 할 돈들이 많다. 어느 의미에선 안경원 개설은 사업성이 확실시 되어야 열 수 있는 기업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자본이 있다고 아무데나 안경원을 기분대로 차릴 성질이 아니고 보면 종사자로서의 만년(滿年)후의 갈 곳이 흔치 않음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주저 않을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안경사로서 충분한 기술을 쌓고 마케팅에 대한 전략도 깊이깊이 연구하며 스스로 실력을 쌓아 나갈 때, 솟아날 기회는 여기저기 있게 되어 있다.
단, 인간 세상에는 노력 없이 어떤 일이든 성취될 수 없고, 운도 따라야 한다. 운(運)은 우연히 오는 게 아니라 노력이 원인이 된 필연의 결과라는 걸 명심하면 오늘의 일에 충실할 수 있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