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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의견으로 가득차기 마련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인간사회의 최선의 삶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정의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행복과 자유, 미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어려웠던 시기에 어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종래 생각되어 오던 수단과 방법에 구애되지 않고 여러 면으로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내 경우 교육장에 지뢰가 예기치 않게 터져 36 육군병원에 입원,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몇 차례 대수술을 거치면서 현대의학의 수혜를 받아 건전한 몸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가슴에서 무릎까지 석고붕대로 통처럼 돌돌 말아 이른 바 깁스를 1년이 넘게 하며 고통스런 병상생활을 했다.
이때에 중환자들은 넘쳐났지만 간병을 할 위생병도 없었고 간호장교도 손이 모자랐다. 경증환자들이 자진해서 들것으로 환자를 나르고 배식하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궂은일을 열심히 했다.
군병원 병상생활도 인간사회여서 중환자들이 입을 모아 군의관에게 건의를 했다.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주자고…. 3~4개월간 열심히 중환자들의 손발이 되다가 제대해 나가는 이들의 손을 잡을 때, 아니 지금까지도 의료 참여를 ‘부정’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시대적 상황 윤리가 우선되었으니까…. 당시는 윤치왕 의무감이 의대 3년생에게 의사면허를 주어 군의관으로 복무케 하던 비상시국이었으니까.
1년간이나 몸을 딱딱하게 감았던 깁스를 가르고 일어났다. 회복은 빨랐다. 55년 6월에는 정형외과 서무계 일을 하게 됐다. 담당 군의관의 요청으로 병리시험실에서 병리실험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다행히 ‘병리시험의 실제’라는 책자는 일본어로 되어 있어 도움이 됐다. 구균, 간균, 진균 등 배지와 배양, 조직표본제작 등 세균실에서 일하면서 군의관들의 박사학위논문 작성에 참여하게 되었다. 모든 논문의 데이터는 손이 많이 갔다.
두 분의 군의관의 논문을 도와드린 후 경북의대 세균학교실에서 진균에 관한 전반적인 논문 작성에 힘써 논문이 통과되어 손을 떼게 됐다.
요즘 표절(剽竊) 논문으로 야단들이다. 수요(需要)가 있으니 공급이 있기 마련인 이 논문이 뭔지도 모르는 분이 박사학위 명함을 스스럼없이 내놓는다.
학위를 출세의 패스포트로 여기는 것은 교육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것은 유행을 탄 취직이 쉬운 기술을, 학습하는 속성교육으로 추락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피터 드러커’가 한 말을 귀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학의 향학열을 막아서는 안된다.
인간은 생존 욕구의 맨 위에 ‘to be fame’ 즉 명예욕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