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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의 역사의 연구에서 말한 도전(Chellenge)과 응전(Respond)에 관한 용어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도전은 경기나 어떤 일에 승패를 겨룰 것을 신청하는 것을 뜻한다면, 응전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도전과 응전이 대치(對峙)되는 것처럼 자율과 타율도 서로 상반(相反)되면서 수순(手順)이 차례 같고 지양(止揚)의 단계 같은 뜻이 함유된 것 같다. 자율(自律)이란 스스로 자기를 규제(規制)하는 것으로 외부로부터의 어떤 제어(制御)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운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철학적으로는 실천 이성이 스스로 보편적 도덕법을 세워 이에 따르는 것을 일컫는다. 이에 비해 타율(他律)은 자기의 본성에 우러나오는 명령에 의하지 않고 다른 힘의 강박(强拍)•구속(拘束)등에 의하여 행동하는 일을 말한다.
조창남협회장이 시무할 때의 일이다. 안과학회에서 콘택트렌즈를 안경원에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을 헌법소원에 제소한 것이다. 이 도전에 재빨리 응전했다. 우리야말로 렌즈를 판매할 수 있다고 응전했다. 결과는 안경원에서 콘택트렌즈를 판매할 수 있게 되고 안과에서는 판매하지 못하게 됐다.
또 하나의 응전은 안과에서, 안경원에서 쓰이는 자동굴절계를 사용치 못하도록 또 법원에 제소했다. 업계 원로이신 정순원, 조창남협회장이 선임된 변호사를 대동, 여의도 어떤 큰 안경원에서 굴절계를 시험•실험하면서 마기중교수의 자동굴절계의 작동원리를 변호사에게 본인이 설명한 즉 변호사가 간편하고 로스(lose)가 적은 데 호감을 갖고 돌아가 결국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승소한 셈이 됐다. 그러나 그땐 그때이고, 여시구진(與時俱進)이란 말이 있듯이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도전에 응전으로 대비할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협회는 이제 초창기 타율에서 자율로 전환하고 있는 반가운 추세에 있다. 발전의 콘텐츠(Contents)는 교육에 있다. 공부는 전문지식 습득 향상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의 소통의 폭이 넓혀진다.
이 달 말경, 협회장 선출이 있다고 한다. 새삼스럽게 매니페스토(manifesto)를 들이 댈 것 까지는 없다. 다만 루비콘(Rubicon)강을 건넌 카이사르(Caesar)처럼 루비콘의 요소를 지닌 사람은 어떤 결정 앞에서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고 말한다. 루비콘요소는 장애와 난관을 돌파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 결정은 순간의 통찰력과 용기도 필요하지만 대개는 무수한 고뇌와 탐색 끝에 나온다고 한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점수(漸修) 끝에 돈오(頓悟)라고나 할까…. 협회도 이에 동조하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