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탄생한 9대 집행부의 공전… 정원석 부회장, 임시총회 주도하며 새 집행부 구성 후 일치 단결 강조
▲ 정원석 부회장(좌) 노예균 수석부회장(중) 심옥섭 부회장(우)
안경인협회장 직무대행 정원석 부회장
역사는 실제 경험을 지녔던 사람들에 의해 서술되어야 한다. 1989년 8월 19일 대전시 소재 중앙관광호텔 회의실에서 열린 총회에서 제8대 집행부가 총사퇴함에 따라 새로운 제9대 임원을 선출했는데, 회장에 김경화(金京華), 수석부회장에 노예균(盧禮均)•정원석(鄭元石) 부회장, 그리고 전남에 심옥섭(沈玉燮) 씨가 부회장에 피선되었으나 수락을 거부했다.
정원석 부회장은 신임회장에게 안경사법 전면거부 결의안을 작성하여 주무당국에 제출할 것을 건의하겠다고 발표하고 의안 심의를 종결하였다. 그러나 8월 24일 김경화 씨가 협회장직 수락을 계속 거부함에 따라 대한안경인협회는 김영석•심재관 두 감사의 요청으로 8월 24일 오후 1시부터 본회 회의실에서 대한안경인협회 각 시도 안경인회 회장 15명 중 10명과 두 감사가 참석한 가운데 시도 안경인회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김경화 회원의 회장직 수락 거부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날 간담회를 마친 각 시도 안경인회 회장들은 김경화 회원을 직접 방문하여 회장직 수락 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는데, 김경화 회원은 그동안 원로 안경인 및 각 시도 안경인회 회장, 그리고 서울지역 중견 안경인들의 계속된 권유로 8월 25일 결국 대한안경인협회 회장직을 수락하여 9대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어 8월 26일 오후 1시에 신임 노예균(신세계 백화점 안경부)수석부회장과 정원석(부산 딜라이트 안경공업사)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안경인협회 회장실에서 신임 회장단 회의를 주재하여 실행 이사진 인선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다음은 8월 28일자로 구성된 대한안경인협회 제9대 실행이사진이다.
총무이사 박종을(朴鐘乙; 서울 동경안경), 기획이사 오세청(吳世淸; 서울 금성안경), 재무이사 조창남(趙昌男; 유니온광학(주)), 법제이사 노경하(盧敬夏, 서울 한전상사), 공보이사 이병룡(李炳龍; 서울 대인상사), 교육이사 김진구(金鎭九; 서울 그리스안경), 사업이사 정대현(鄭大鉉; 서울 미라노안경).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됨에 따라 협회는 김경화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심옥섭 부회장도 회장의 권유로 사의를 번의하고 참석) 및 실행이사진 10명과 심재관 감사가 참석한 가운데, 8월 28일 오후 5시 대한안경인협회 회의실에서 제8차 실행이사회를 개최하였다(오세청 기획이사는 불참).
이날 회의에서는 회의 자료에 의거, 성원보고와 업무보고, 토의사항 심의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특히 토의사항 중 89년도 임시대의원총회 결의사항인 안경사법에 관한 대책위원회 구성의 건에 대한 심의 진행중 정원석부회장으로부터 총회 결의사항인 안경사법 전면거부 결의안 작성의 건이 본 이사회 회의자료에 누락된 연유에 대한 질의를 시작으로 참석 임원들의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개진되어 회의는 밤 10시 30분까지 계속되었다. 김경화 회장은 정원석 부회장의 질의에 대한 답변과 설명에서 지난 제1차 임시대의원총회의 결의사항인 안경사법 전면 거부에 대하여 현재의 시점에서는 결과적으로 시의적절한 것이 아니였다고 밝히고, 안경사 국가시험 등으로 시일이 촉박한 만큼 현실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일단 법의 시행을 받아들인 후에 서둘러 개정하여 나가도록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면서 제2차 임시대의원총회 개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이와 다른 의견을 가진 참석 임원들은 제1차 임시대의원총회의 결의에 따라 대책위원회를 구성, 전면 거부 투쟁 및 또는 법개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같이 의견이 계속 상충됨에 따라 김경화 회장은 거듭하여 안경사법 전면 거부 이후의 대책방안 수립 등의 애로사항과 앞으로의 예정된 상황들에 대한 현실론을 열거하며 제2차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제1차 임시대의원총회의 결의사항을 수정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본인의 이러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본인의 회장직 사퇴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경화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구두로 사퇴 의사를 분명히 밝힌 뒤(이때 노예균 부회장과 심옥섭 부회장도 회장이 사퇴하면 자신들도 사퇴하겠다고 사의를 표명) 8월 30일 사퇴서를 작성하여 사무국에 접수시켰다.
또한 노예균 수석부회장도 같은 날짜에 사퇴서를 사무국에 접수시켰다(심옥섭 부회장은 유선으로 사의를 확인했다). 이로써 회장 및 수석부회장이 유고됨에 따라 정원석 부회장이 회장의 직무를 부득이 하게 대행, 8월 30일 제1차 임시대의원총회의 결의에 따라 각 시도 안경인회장 15명을 포함한 37명 규모의 위원을 선임하고, 안경사법 대책위원회를 공식 구성하였다.
집행부의 진공상태가 야기되자 정원석 부회장은 2차 임시총회까지 회장의 직무를 대행함으로써 업무의 공전을 막을 수 있었다. 정원석 부회장은 김영석•심재관 두 감사의 소집요구에 의해 1989년 제2차 임시대의원총회를 소집토록 8월 30일 결정하였다.
제2차 대의원총회는 9월 7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소재 한국일보사 12층 대강당에서 열기로 9월 1일자로 최종 확정하였다. 정 부회장, 회장 직무대행으로 총회 진행
1989년 9월 7일, 한국일보 12층 강당에 모인 전국 대의원들은 매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가졌다. 안인모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총회는 재적임원 및 대의원 266명중 224명이 참석하였다. 정원석 부회장은 개회 인사말에서 “지난번 임시총회를 개최한 후 또다시 임시총회를 열게 되어 대단히 죄송하지만, 안경업계가 사활(死活)의 기로(岐路)에 서있는 이때 집행부가 공전되고 있는 상태여서 부득이 임시총회를 소집하였다”고 서두를 꺼낸 뒤 “그러나 안경사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으며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지난 날을 반성하고 이제 새로 구성되는 집행부를 구심적으로 한 목소리로 일치단결하여 좋은 결과가 오리라 확신하며, 여러분의 중지를 모아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자”고 당부했다.
사무총장의 업무보고에 이어 89년 9월 4일 오후 2시 서울 만리성에서 대책위원 38명 중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호곤 대책위원은 본인이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고 전제하고, “우리들의 요구사항과 건의들을 당국에 요청하는 것은 물론, 각 언론사를 통해 우리들의 입지를 호소하는 홍보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