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자연의 순행은 한 치의 어김이 없다.
꽃말이 ‘고귀함’인 목련은 매년 1월 중순이면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꽃망울을 품는다.
또 ‘순결과 행운’이 꽃말인 벚꽃은 3월 경칩을 지나 온도가 10℃ 이상 유지되면 서귀포를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대략 15일에 걸쳐 경기도 파주에 이른다.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산수유도 3월이면 어김없이 들녘을 노랗게 물들인다.
우리는 매년 봄마다 혹한의 추위를 이겨낸 꽃들의 개화(開花)를 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순리를 배운다.
다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벚꽃 개화 시기가 지난 10년간 열대성 기후로 인해 평균 2주가량 빨라졌다고 말한다.
사과의 산지도 대구 경산에서 해마다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기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십수 년 전까지 한겨울에 삼한사온(三寒四溫)이 큰 오차 없이 순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후 변화로 추운 날씨가 3일간 이어지다 따뜻한 날씨가 4일가량 반복하는 삼한사온이 사라졌다.
자연의 기후도 세상처럼 변하는 것이 순리라면 인간으로서 순응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이 소금이다.
요즘에는 소금이 옛날처럼 귀한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소금=변치 않는 신뢰’라는 상징성은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자신의 손주나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필요한 인물이 되라’는 뜻에서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한다.
소금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순수’로 상징되고, 성경에서는 소금을 ‘언약’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소금이 석기시대에는 황금, 노예와 함께 3대 재화였다고 말한 이는 마샬 살린스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석기시대의 경제학」에서 구석기인들은 하루에 보통 2~3시간 노동하고, 그 댓가로 자신의 발 크기만큼의 소금을 받아 화폐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했다.
그런 때문인지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소금을 작은 금(소금)으로 지칭했고, 유럽에서는 지금도 소금을 부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빵과 소금으로 대접했고,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중요한 계약을 맺을 때 당사자들이 서로 소금을 나눠먹으며 증거로 삼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소금인 것이다.
그러나 소금과 달리 요즘의 설날 구정은 예전과 너무 많이 변했다.
어릴 적에 구정 설날이 오면 복이 들어오라는 뜻에서 복조리를 문에 걸었고, 아낙네들은 널뛰기, 가족들은 한 해의 운세를 점친다는 뜻에서 윷놀이로 새해를 즐겼다.
또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속신에서 옹기종기 모여 새해를 뜬눈으로 맞기도 했다.
지금은 대부분 기억의 한켠으로 물러난 구정 풍습이다.
어릴 적 소중한 풍습도 수십 년 세월에 묻히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우리 인간의 편리한 순응력 때문이리라.
을사년 세밑에 봄을 기다리며, 새해에 부디 독자 여러분들의 건강과 다복하심을 기원 드린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