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1866년 모스크바에서 부유한 차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나 모스크바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대학교수까지 되었지만, 미술을 좋아해 30세에 모델 데생과 스케치를 배우다 1896년 뮌헨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14년 세계1차대전 발발로 러시아로 귀국했다가 1921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예술과 건축을 위한 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벽화공방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프랑스로 귀화해 추상미술의 대가로 활동하다가 1944년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에서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눈이 나빴던 그는 일찍부터 안경을 끼고 살았지만, 정작 자신보다는 그의 뮤즈였던 가브리엘레 뮌터가 그의 안경 쓴 모습을 작품 속에 많이 남겨 놓았다.
이 작품엔 독일 표현주의 여류화가 가브리엘레 뮌터와의 러브 스토리가 담겨있다.
1903년 스승과 첫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나 4년간 파리와 유럽 등으로 작품여행을 다니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에 사촌지간의 아내가 있는 칸딘스키는 1차대전 발발로 독일의 적국인 러시아로 돌아갔다.

1916년, 당시 중립국이었던 노르웨이 스톡홀름에서 개인 전시회 차 방문한 칸딘스키와 어렵게 재회를 했으나 이를 끝으로 러시아 육군 장성의 딸인 27세의 어린 니나와 결혼까지 한 칸딘스키는 그를 타국에서 4년간이나 기다린 뮌터에게는 일방적인 결별통보를 선언했다.
충격에 빠져 뮌헨으로 돌아온 뮌터는 한동안 우울증과 무력감에 휩싸여 한 점의 그림도 그리지 못했지만, 화가로서 칸딘스키를 존경했던 진정한 예술가였던 뮌터는 그와 지냈던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무르나우의 한 집에서 칸딘스키의 작품 143점을 보관해 오다가 뮌헨정부에 기증했다.

칸딘스키의 돋보기를 마치 편광 선글라스처럼 푸른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곧은 직선과 둥근 곡선들이 서로 교차하고, 다양한 원형들은 풍부한 색채와 어우러져 마치 공간에 울려 퍼지는 한편의 선율을 보여주는 듯하다.
화가는 그 음악적 선율을 색으로 조율하여 아름다운 연주를 이끄는 지휘자로 여겼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