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서 회화에 안경이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이탈리아 북부도시 베네치아로부터 약 40km 가량 북쪽에 위치한 트레비소의 산 니콜로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벽화의 한 초상화 장면이다.
1352년 토마소는 도미니크 수도회로부터 교황, 추기경, 신학자 등을 포함한 40명의 도미니크회 학자들의 모습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이 그림에 그려진 안경은 일명 대갈못 안경으로 안경을 쓴 사람은 ‘프로방스의 위그’라 불리던 유명한 성서 주석가이자 성 세르 교회의 주교였던 위그(HUGH) 주교다.
참고 : 논란이 분분한 안경의 시초는 1268년 영국의 로저 베이컨이 광학적 목적으로 활용한 렌즈를 기원이라고 하는 영국 기원설과 13세기 피렌체 사람인 살비노 아마티(1258~1312)의 묘지 비문에 ‘안경 발명가 여기에 잠들다’라고 표기된 연유를 들어 13세기말에 발명되어 14세기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이태리 기원설 등이 유력하다고 전해진다.
벽화들 속에 묘사된 인물들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책상에 앉아 모두 열심히 책을 보거나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 중 한명인 위그 주교는 서양에서 아직 안경이 발명되기 훨씬 전인 1263년에 사망하여 생전에 한 번도 안경을 쓰기는커녕 본 적도 없었다고 하는데 화가는 벽화에다 왜 안경을 쓰고 있는 인물로 묘사했을까?

그 이유는 화가가 살던 시절에 처음 발명된 안경은 엄청 귀한데다 값도 매우 비싼 물건이어서 당시 중세사회에서 최고의 신분이었던 교회 성직자들이 신분상 위엄이나 심오한 종교적 철학의 상징 수단으로 안경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안경은 성서를 항상 접하는 수도자나 신학자들에겐 글자를 잘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질적인 도구로써 회화 속에 그려지곤 했다.
당시 도미니크회 수사들은 ‘말씀의 전달자’로 매우 높은 신분이었고, 교회나 귀족들은 이러한 그림을 주문해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