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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사의 가치
  • 본지 허선
  • 등록 2015-01-15 17: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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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고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 것이 세상사(世上事)인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갖고 맞이한 연초부터 규제개혁 민관합동회의에서 ‘안경사의 타각적 굴절검사 미수용’이 튀어나오고 보니 안경사들 마음이 미어진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그나마 작은 위안꺼리였던 타각적 굴절검사가 단칼에 잘려나가니 꿈까지 꺾이는 것 같아 서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안경사들의 희망은 제도권에 들어온 1989년부터 끝났을지 모를 일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거대자본을 차단하고, 안경인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으로 피땀 흘려 만든 일명 안경사법이 오히려 안경사의 발목을 잡는 모양이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정부가 정한대로 1년마다 8시간의 보수교육도 성실하게 받았고, 면허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도 돌아오는 것은 공허함 뿐이다. 안경사들이 제도권에 들어왔다고 분수에 넘친 호사(豪奢)를 바라지도 않았지만, 돋보기까지 안경사 손에서 뺏어가겠다는 정부 처사에 속이 아프다.

이쯤 되면 안경사는 죽거나 살거나 끝장을 내는 게 옳다. 국가공인 면허인이 몇몇 업자들이 저지른 ‘짝퉁 안경’과 ‘불량 컬러렌즈’로 애꿎게 뭇매를 맞는 처지라면 차라리 거추장스런 면허증 떼어내고 장사꾼으로 사는게 편할 지 모른다.

자기 안경원의 고객이 아니더라도 안경렌즈가 빠졌다고 찾아오면 무료로 군말 없이 끼워주고, 뒤틀린 안경테를 보면 내 식구의 안경처럼 곧게 펴주어도 푸대접만 받는다면 이건 말이 안된다.

인류가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천연동굴을 벗어나 오막살이를 짓는 ‘가치’들이 모여서 발전시킨 것이 역사다. 비록 인간이 만든 가치가 기준 없이 시대 따라 변한다지만, 미래도 보장 못하는 면허증이라면 족쇄이고 종잇장에 불과하다.

아무리 이 세상의 가치가 상대적이라고 해도 안경을 잘 맞추기 위해 타각적 굴절검사를 주장하는 안경사의 요구는 들어주는게 맞다. 사막에서 1천 원짜리 생수가 1백만 원의 보물보다 값질 수 있고, 커피 한 잔 값으로 지불되는 1달러가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1주일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되는 것은 저마다 다르게 갖고 있는 가치때문이다.

안경사가 국민의 시력 보전을 위해 타각적 굴절검사를 하는 것이나 안과의사가 타각적 검사를 하는 것은 저마다 처지에 맞는 가치를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안과의사에게는 케라토미터를 이용한 타각적 굴절검사를 인정하고, 오히려 1년 이상 타각적 검사를 공부한 안경사에게는 의료행위라는 굴레를 씌어 못하게 막는다면 그 누가 가치를 품고 살겠는가.

안경사들이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타각적 검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을 써먹는 것이 당연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힘 있는 안과의사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것이 세상 가치라면 바꾸는 것도 세상의 가치다.

똑같은 칼이라도 의사에 손에 있으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 도구가 되고, 흉악한 강도의 손에 들리면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된다지만, 그렇다고 안경사가 고객의 시력을 망치는 돌팔이는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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