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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경북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난 선생의 필명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받은 수인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으며, 나중에 한자만 이육사(李戮史), 이육사(李陸史)로 고쳤다. 또 다른 필명으로 이활(李活)이 있다.
선생은 일찌기 1929년 광주학생운동 등에 연관되어 모두 17번에 걸쳐 옥고를 치렀고, 베이징 대학을 졸업한 뒤 <황혼>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후부터 언론인으로 중국,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이어서 1937년에 김광균 등과 동인지 <자오선>을 간행, <청포도> <광야> 등 민족의 슬픔을 노래한 강렬한 저항시를 주로 발표한 선생은 1943년에는 국내에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이듬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유고시집<육사시집>(1946)은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출간되었고, 이후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하에서의 그의 항일 투쟁 및 시작활동을 기려 건국포장, 건국훈장 애국장,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고, 선생의 탄신 100주년과 순국 60주년을 기념해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 원촌마을에 이육사 문학관이 2004년 건립되면서 이때부터 시문학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원형 뿔테 안경을 쓴 선생을 통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시대의 슬픔을 온몸으로 감싸던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인 이육사 일생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