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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히어로‘마린보이’박태환을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 수영의 대들보 조오련이라는 커다란 거목이 떠오르게 된다.
한국인 최초로 1970년과 1974년 방콕과 테헤란에서 각각 개최된 아시안게임 수영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를 연이어 석권, 4관왕에 오른 ‘아시아의 물개’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영웅이다.
1952년 전남 해남에서 5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난 조오련은 일곱 살 때부터 동네 실개천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보다 못한 수영선수가 1등을 차지하는 것에 자극받고 수영에 일생을 건다는 각오로 해남고등학교를 자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고 간판집 일꾼으로 근무하면서 종로 YMCA 실내수영장에서 실력을 쌓는다.
그리고 얼마 후 개최된 전국체전 일반부에 출전, 한국 신기록으로 1등을 차지한 조오련은 그의 실력을 눈여겨 본 당시 민관식 체육회장의 권유로 양정고등학교 2학년에 복학한 이듬해인 고3 때 개최된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수영의 백미(白眉)라는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에서 신화를 이뤄냈다.
선수 시절에 한국 신기록을 50번이나 갱신했던 조오련은 은퇴 후에도 바다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980년 13시간 만에 대한해협을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1982년 도버해협, 2000년 대한해협 2차 횡단, 2003년에는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에서 여의도까지 한강 600리를 완주했다.
그리고 2008년 3ㆍ1운동의 민족지도자 33인을 기리기 위해 독도 33바퀴 돌기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료, 국민에게 독도 사랑이라는 큰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2009년 3번째 대한해협 횡단을 위해 제주도에 훈련캠프를 설치, 또 한 번의 기록 도전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레 8월 4일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2006년부터 노안으로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한 조오련 선수는 평소 깨끗한 이미지를 주는 무테안경을 즐겨 썼다. 사진은 웰링턴 스타일의 프레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