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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야밤에 몰래 도망치게 하는 병원장’ ‘정년퇴임 후 오갈 데가 없어서 병원 옥상 20평 남짓한 임시 관사에 기거할 만큼 무소유를 실천한 의사’ ‘봉급과 수당도 모자라 매달 가불을 해서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는 의사’.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장기려(張起呂) 박사와 환자들 간의 일화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19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윗돌처럼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경성의전을 졸업한 후 평양의과대학 외과교수, 평양도립병원 원장,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간(肝)에 대한 논문으로 일본 나고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50년 월남한 이듬해부터 부산에 천막으로 만든 복음병원을 설립, 행려병자와 불우이웃, 군인들 치료에 전념한 장기려 박사는 59년 국내 최초로 간대량(肝大量 : 간이식)수술을 성공하고, 68년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다.
바쁜 진료 중에도 부산대·가톨릭대·서울대 등에서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은 장기려 박사는 85년부터 94년까지 한국장애자재활협회 지부장으로 촛불 역할을 해왔다. 그의 일생은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로 김은식에 의해 그려지기도 했다.
부산복음병원 원장으로 40년을 근속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의 병원비를 대납하기 위해 땅 1평 없이 완전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장기려 박사는 반평생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다 1995년 당뇨병으로 86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장기려 박사가 평생 애용한 안경 스타일은 하금테이다.
- 59년 국내 최초 간대량 절제수술 성공
- 국민훈장 동백장
- 79년 막사이사이상 사회봉사 부문 수상
- 81년 국제라이온스 인도상
- 93년 한국청십자 사회복지회 명예 대표이사
- 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 06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