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추석이 다가왔다.
장방형의 옻 입힌 홍갈색 차례(茶禮)상에 햇과일과 어육들의 포(脯)가 올라가고 국과 메가 올려진다. 이윽고 제주가 절하고 술잔에 술을 붓고 메에도 숟갈을 꽂아 놓고 국그릇에도 수저를 담근다.
잠시 후 삼배를 올리고 제주 옆에 잔심부름 한 객주에게 음복을 권하면 차례가 끝난다. 지방마다 차례상에 올리는 과일과 어육의 배치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동소이할 뿐이다. 온 식구가 경건히 차례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즐겁게 한다.
매년 빼놓지 않고 딸 아들 둘 데리고 명절 때면 꼭 제의(祭儀)에 참례하는 게 고마웠다. 그리고 성묫길도 애들 데리고 먼저 나선다. 지난해만 해도 ‘어서 다녀오라’시던 노모가 손자며느리가 선물로 사왔다는 담황색 바탕에 흰 국화무늬가 드문드문 박힌 두루마기를 입고 앞장 서 나선다.
영감 무덤 봐야한다는 어떤 절박감 같은 조짐을 느꼈음인지는 딱히 알 수 없으나 한사코 먼저 서두르는 데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증손자 손자 딸들을 끼다시피 가운데 앉아 섰고 아들 내외가 앞좌석에 앉아 아버지가 탄 차를 쫓아가면 된다. 앞차에 빈들이 보이지만 갖은 음식과 과일, 제석(祭席)까지 준비하고 실으니 빈차 같지만 꽉 찼다.
부산에서 진주까지 고속이고 산소가 있는 곳은 산청인데 몇 시쯤 도착할 것이라는 통지를 한 탓일까, 동네 어귀에 친척 형 일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내려 반가움을 손에 손잡고 털고 산소로 갔다.
깨끗이 벌초된 봉분의 떼 위에 윤기마저 감도는 듯이 보였다. 이윽고 제수(祭羞)로 갖고 온 것을 하나하나 정성껏 뫼의 상석(床石) 위에, 그 밖의 것은 주위에 골고루 차례로 펴놓는다. 순서대로 재배하고 술 따라 뫼의 떼 위에 붓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술 따라 부으면서 뭐라고 소곤소곤 대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나도 얼마 안 있으면 영감 곁으로 올 모양잉께, 기다리고 있으소’였는지 모른다.
산청에는 그 유명한 처사(處士),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유명하고 조금 너머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鄭汝昌) 선생이 계시던 곳. 아직도 한학에 떠나지 않고 있는 곳이 산청, 함양, 합천뿐이다. 동양 3국에서 숭조(崇祖)사상이 심한 곳이 아마 한국일 것이다.
조상은 나의 존재의 근거다. 반대로 자손은 나의 생명의 연장이다. 나는 비록 죽지만 나의 혈육을 나눈 자식이 살아가는 이상 나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고 영생할 수 있다.
다음 무덤은 무엇인가? 분묘(墳墓)는 없는 것을 있게 만든 것. 「현대문학」에서 주간을 지내시다가 낸 조연현(趙演鉉) 선생의 에세이집 「휴일의 의장(意匠)」에서 주창(主唱)한 내용이다. 없기 때문에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있다.
물리적 근거 위에 인간의 내적 정신활동의 소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숭조사상은 인격을 지니게 한다. 인격은 정의로운 인류적 가치와 보편적 가치인 도덕성을 의미한다. 오랑캐나 왜구, 모두 인격을 갖춘 무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