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로서 그의 사상적 지주이자 평생 존경했던 사람이 바로 프루동이라고 단언하던 프랑스 사실주의 대표화가 구스타브 쿠르베(1819~1877).
그는 프루동이 사망한 사실을 늦게서야 알고 7년 뒤인 1865년에 그의 생전 모습을 두 번 화폭에 담았다.
그 중 하나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프루동의 초상]이고, 다른 하나는 프티팔레 미술관에 소장 중인 [프루동과 그의 아이들]이다.
프루동은 가난한 양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철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었고 1840년에 발간한 첫 저서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소유, 그것은 도둑질이다!’라는 짧지만 임팩트 넘치는 문장으로 프랑스의 선구적인 사회주의 사상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1858년 파리에서 급사할 때까지 가난에 더해 정치적 탄압까지 짊어진 채 오랜 시간을 수감자로, 망명자로 살아야 했다.
어두운 배경에 검은색 옷을 입고 테와 다리가 매우 얇은 안경을 쓴 채 상반신을 드러낸 프루동은 철학자이자 사상가답게 품위를 가지면서도 지적이고 사려 깊은 눈매로 표현되고 있다.
소박한 셔츠에다 얇은 안경을 낀 채 두 딸과 함께 집안에서 망중한을 보내는 프루동 모습의 헌정 초상화를 그렸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던 그의 곁에는 여러 책과 잉크스탠드가 놓여 있고 두 딸과 함께 있는 모습에서 그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원래 제목은 [1853년 피에르 조셉 프루동] 이었으며 머리 오른쪽 검은색으로 칠해진 부분에 그의 아내도 함께 그려 가족 초상화로 그렸지만 1865년 전시가 끝난 후 제목도 바꾸고 아내 얼굴도 일부 지웠다고 한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