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1903년
19세기 후반 독일의 귀족이나 저명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유명해진 프란츠 폰 렌바흐 (Franz von Lehnbach, 1836~1904) 뮌헨 인근, 슈로벤하우젠 출신의 초상화가다.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다가 22세 때 스승 K.T.필로티로부터 그림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고, 이태리로 미술여행을 떠나 로마 체류 중 많은 거장들의 작품들을 모사한 덕분에 명암대조법, 색채, 다양한 회화적 특성 표현 기법 등을 익히게 되었다. 26세에 독일 귀국 후 바이마르 미술학교의 교수로 임용됐으며, 사람의 용모 묘사에 예리한 관찰력을 가져 초상화에 몰두했다. 그의 모델로는 황제 빌헬름 1세, 리하르트 바그너, 프란츠 리스트, H.몰트케 등 당대의 거물급 인사들이 많았는데, 특히 독일의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딸 마리아와 렌바흐] 1895년, 게오르그 쉐프 미술관, 슈바인 프루트, 독일.
50세 중반에 부인과 이혼을 하고 어린 딸이었던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던 시절의 자화상이다. 사진이 아니라 거울을 보며 그린 이 작품은 안경 너머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두 눈과 함께, 마리아의 팔을 잡고 있는 그의 움켜진 왼손으로 보아 외부의 그 어떤 억압으로부터도 반드시 어린 딸을 지켜내겠다는 그의 다짐과 의지가 마리아의 부라린 두 눈 속에도 담겨있는 듯하다.
[목동] 캔버스에 유채, 1860년, 노이에피나코텍, 뮌헨.
그림의 무대는 아레징이라는 화가의 고향 인근의 조그만 마을이다. 남루한 옷에 흙이 묻은 맨발의 모습으로 언덕 위에 누운 소년은 한가한 시골 목동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쥬고 있다. 힘들게 소몰이를 하던 중 밀려오는 노곤함과 따스하게 내리쬐는 봄볕에 눈을 가리고 잠시 졸고 있는 마치 화가의 자화상 같은 그림이다. 주위에 피어 있는 들꽃과 나비들, 흙과 하늘을 벗 삼아 자신만의 푸르고 깊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본래 뮌헨에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사용하던 아틀리에에 세워진 미술관이 있었는데, 1924년 뮌헨시가 이를 사들여 신축 후 재개관한 시립 렌바흐미술관이다.
바이에른 지역에서 그의 위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 미술관은 제2차 세계대전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러 차례 문을 닫은 적이 있지만, 지난 5월 15일자에 게재한 바실리 칸딘스키의 예술적 동지이자 연인인 가브리엘레 뮌터가 이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제 역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독일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를 주도한 프란크 마르크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어, 일명 ‘독일 청기사파 작품의 수장고’라고 불리는 미술관이다.
출처: 옵틱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