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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안경광학과 기틀 세운 성풍주 교수,“학생 여러분, 좋은 안경사 되세요” 국내 최초 ‘로안경고등기술학교’출강하며 전문 안경사 양성 2011-03-02
강정희 기자 webmaster@opticweekly.com
 
추천이유 : 건양대 김재민 교수는 우리나라 안경광학과의 기틀을 세운 성풍주 교수를 이번 호 ‘칭찬합시다’ 인물로 추천했다. 1985년부터 대전보건대 안경광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안경광학에 관련한 다수의 저서 집필과 국내 안경광학과를 탄생•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이라며 추천 이유를 밝혔다.

안경광학 관련서적을 찾다보면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바로 ‘성풍주’라는 세 글자. 안경사 국가시험이 없던 시절부터 안경광학 저서를 집필해 국내 안경 전문가 양성에 큰 획을 그은 이름이다.
국내 안경광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물론이고, 안경업계에 몸담고 있는 안경인라면 기억하고 있는 이름 석 자 성풍주. 국내 안경광학과의 초석을 다진 대전보건대 안경광학과 성풍주 교수가 이번 호의 주인공이다.


국내 최초로 안경광학 연구 위해 渡日

성풍주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안경과 인연이 깊었다. 부친이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는 부친을 보며 자란 성 교수는 항상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바로 ‘국내에는 왜 안경 전문가가 없는가’였다.

학창시절부터 부친의 일을 도왔던 성 교수는 ‘보다 전문적인 안경 지식’에 목말랐다. 연세대학교 화학과 재학시절에도 도서관 구석구석을 뒤지며 안경전문 서적을 찾아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국내에는 안경전문서가 전무한 상황이었고,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안경전문학교를 알게된 성 교수가 비행기에 몸을 실은 때가 1973년의 일이다.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성 교수의 결심은 오직 하나 ‘제대로 배우자’ 였다.

1973년 일본안경전문학교에 입학해 1975년 졸업한 그는 곧바로 동경대학교 물리공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렌즈 설계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열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성 교수가 일본에서 안경학에 몰두한 동안, 국내에서는 안경 전문가 양성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1978년 안경인협회(대한안경사협회의 전신)는 안경사 자격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통신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국내에는 안경 전문 서적이 거의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각 의과대학 안과학 교수 등을 섭외해 안과관련 전문서를 만들고 싶었지만 원고를 집필할 전문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떠오른 인물이 바로 성풍주 교수였다.

처음 안경인협회가 성 교수에게 의뢰한 것은 통신교육에 필요한 강의록이었다.

성 교수는 그동안 일본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 외국 서적을 토대로 안경조제 광학분야 교재를 완성했다. 국내 최초의 안경광학 전문서가 탄생한 순간이다.

성 교수가 교단에 선 때는 1979년이다. 일본에서 1979년 귀국한 성 교수가 1년제 안경고등기술학교에서 3년간 학생을 가르친 것이다. 당시 국내 대학에는 안경광학과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리고 1984년 국내 최초로 안경광학과가 대구보건대에 개설되고, 이듬해인 1985년 대전보건대 안경광학과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성 교수의 안경광학과 교수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후학들 산•학•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안경광학과 교수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성풍주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입학생에게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좋은 안경사가 되라’는 말이다.

성 교수는 “‘좋은 안경사가 되라’는 말은 1회 입학생부터 올해 졸업하는 학생들까지 빼놓지 않고 당부하는 말”이라며 “단지 타이틀을 얻기 위해 유학을 간다거나 석•박사 과정에 임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좋은 안경사가 되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다 보면 그 이후에 저절로 오는 것이 타이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성 교수가 배출한 수많은 제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왕성하게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거나 협회에서도 남다른 활약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성 교수가 애틋하게 생각하고 기억에 남는 제자들은 안경고등기술학교 출신과 1회 대전보건대 안경광학과 졸업생이다. 안경사 자격시험이 없던 시절에 안경광학과를 택한 학생들은 일종의 모험을 한 것이 대견해 보이기 때문이다. 성교수는 ‘이런 모험심과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에 안경사 자격시험제도가 정착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1988년 국회법을 통과한 안경사 자격시험은 그해 말 처음으로 치러져 ‘안경 전문가’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성 교수가 안경광학과 교수로 임용된 시기는 학문적 토대가 척박했던 시절로 ‘안경사’라는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기 위해 힘겨운 시절이었다. 성 교수 같은 선구자들의 노력이 모이고 쌓여서 현재의 수많은 안경광학과가 개설되고 전문 안경업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국내 안경시장을 만들 수 있었다.
지난 2월 24일 교수 정년 퇴임식을 가진 성 교수는 이제 제3막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노(老)교수가 오랫동안 뿌려놓은 결실은 우리나라 안광학 역사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수없이 집필한 보석 같은 저서가 앞으로도 전국의 안경광학과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며 꽃을 피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구자’ ‘첫발’ 등의 단어에는 존경과 경이로움이라는 어감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안경광학의 초석을 세우고 선구자적 역할로 평생을 바쳐온 성풍주 교수. 우리는 정년 퇴임식을 맞는 교수님께 전체 안경인들의 마음을 담아 존경과 감사의 말씀으로 그의 수고로움에 대신할 뿐이다.

칭찬합시다_ 다음편
성풍주 교수는 휴비츠광학 김현수 대표를 다음 호 ‘칭찬합시다’ 인물로 추천했다. 국내 검안기 제조기업 중에서 가장 정확한 데이터와 설계를 바탕으로 제품을 제조•생산하고 있으며 올곧은 기업경영이 귀감이 된다는 것이 추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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